문화 일상

요즘 아이들, ‘옹기’를 모른다? 전통문화 교육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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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초등학교 4학년 조카가 내 집에 놀러 왔다가 찬장 속 옹기단지를 보고 하는 말. “이게 뭐야? 돌로 만든 화분이야?” 순간 내가 웃었지만, 속으로는 좀 씁쓸했다. 옹기는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그릇인데, 요즘 아이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구나 싶어서. 이게 단순한 세대 차이일까, 아니면 우리 전통문화 교육의 큰 구멍일까.

사실 나도 옹기에 대해 알게 된 건 결혼 후 시댁에서 장맛을 담그면서부터다. 시어머니가 쓰시던 오래된 간장독을 보며 처음으로 ‘이게 그냥 질그릇이 아니구나’ 싶더라. 그때부터 서서히 옹기에 꽂혀서 관련 책도 읽고, 전시회도 다니고, 집에 하나씩 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옹기를 좋아하는 나도, 조카 세대에게 설명하려니 막막했다. “응, 이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시던 그릇인데, 숨 쉬는 그릇이란다” 하니까 조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전통문화를 얼마나 추상적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절감했다. 실제로 내가 옹기에 대해 처음 배운 것도 책이 아니라 장독대에서였다. 그 경험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는 살아 있는 전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옹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최근 초·중·고교에서 전통문화 교육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지역 향토사와 전통 공예는 거의 배울 기회가 없다고 한다. 교과서 속 사진으로만 보는 옹기와 한지는 아이들에게 실감 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나도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민화’가 박물관에나 있는 그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2022년 교육부의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을 보면, 전통문화 관련 내용이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포함되긴 했지만 실제 운영은 학교 재량에 맡겨져 있어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전통문화 수업을 하려 해도 자료도 부족하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는 교육 현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첫째, 우리는 전통문화를 ‘박제된 유물’로만 가르친다. 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보는 옹기는 숨 쉬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 옹기는 사용할수록 숨을 쉬고,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드는 살아 있는 그릇이다. 이렇게 살아 있는 쓰임을 전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옛날 사람들이 쓰던 낡은 거’로만 인식한다. 예를 들어, 옹기에 담근 장맛이 일반 플라스틱 통에 담근 것과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조차 교육에서 빠져 있다. 내가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은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라, 그릇이 음식에 생명을 불어넣는 원리였다. 옹기의 미세한 기공이 공기를 순환시켜 발효를 돕고, 흙의 미네랄이 맛을 깊게 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어떨까? 그러면 옹기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과학과 문화가 만난 결과물로 다가올 것이다.

둘째, 미디어와 콘텐츠의 부재다. 아이들은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 자란다. 그런데 전통문화를 다루는 재미있는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 몇몇 유튜버들이 한지 공방이나 옹기장인을 조명하는 영상이 인기를 끌었지만, 여전히 주류는 아니다. 한국전통문화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전통문화 관련 유튜브 콘텐츠의 시청 연령대가 40대 이상에 편중되어 있다는 통계가 나온다. 10대들은 전통문화를 ‘재미없는 어른들의 것’으로 인식할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 조카도 처음에는 ‘옛날 거’라며 관심이 없었지만, 우연히 본 옹기 만들기 ASMR 영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흙을 빚는 소리, 물레 돌아가는 소리가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문화도 적절한 미디어 포맷만 갖추면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셋째, 체험 위주의 교육이 부족하다. 내 조카에게 옹기에 대해 설명할 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직접 만져보게 하는 거였다. “손을 넣어 봐, 겉은 매끈한데 안쪽은 좀 거칠지?” 그리고 찬장에서 옹기에 담긴 간장을 꺼내 냄새를 맡게 했다. “와, 냄새가 다르다!” 그 반응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아이들은 손으로 만지고, 코로 맡고, 입으로 맛볼 때 가장 잘 배운다는 것을. 이는 교육학에서 ‘다중 감각 학습’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하버드대 교육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다양한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일 때 더 오래 기억하고 깊이 이해한다. 따라서 옹기 교육도 시각적 자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촉각, 후각, 미각을 활용한 체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작은 실천을 제안해 본다.

1단계: 부모와 교사가 먼저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라.
아이들은 어른을 따라 배운다. 내가 옹기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니, 조카도 자연스럽게 “이모는 왜 그렇게 옹기를 좋아해?”라고 묻게 됐다. 그 질문이 교육의 시작이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한지나 옹기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아, 이거 중요한 거구나”라고 느낀다. 나는 주변 엄마들에게 옹기 하나씩 선물하면서 ‘이건 숨 쉬는 그릇이래’라고 말해주는데, 그중 몇 분은 실제로 아이와 함께 옹기로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아이가 옹기에 담근 장맛이 더 맛있다고 해서 놀랐어요”라며 즐거워했다. 이처럼 어른의 관심이 아이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2단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를 만들어라.
굳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 집에 옹기 한두 개만 있어도 아이는 호기심을 가진다. 나는 지난주에 조카에게 작은 옹기 약병을 선물했다. “여기에 너만의 비밀 편지를 넣어둬”라고 말해주니까 좋아하더라. 그런 작은 접촉이 쌓여서 아이의 기억에 ‘옹기’가 ‘재미있는 것’으로 각인된다. 또한 지역 도자기 체험관이나 옹기 공방 체험 프로그램을 주말에 가보는 것도 좋다. 직접 흙을 빚고 구워보는 경험은 교과서 백 권보다 낫다. 예를 들어, 경기도 이천의 ‘옹기마을’에서는 가족 단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아이들이 직접 작은 옹기를 만들어 가져갈 수 있다. 이런 경험은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3단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연계하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튜브나 SNS에서 전통문화 관련 콘텐츠를 찾아 함께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 영상 봤어? 옹기 만드는 아저씨가 신기하지?”라고 말을 걸면 아이들도 흥미를 보인다. 최근에는 인기 크리에이터들이 전통 공예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유튜버는 옹기장인을 찾아가 직접 옹기를 만들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올렸는데, 조회수가 100만을 넘었다. 이런 콘텐츠를 활용하면 아이들도 전통문화를 ‘트렌디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학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시간에 전통문화 콘텐츠를 분석하거나 직접 제작해보는 활동을 하면, 아이들은 능동적으로 전통문화를 탐구하게 된다.

4단계: 지역사회와 협력하라.
전통문화 교육은 학교만의 몫이 아니다. 지역의 전통문화 유산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지자체와 협력하여 운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주에서는 한지 체험 프로그램을 학교와 연계하여 정규 수업으로 진행하는 사례가 있다. 옹기 역시 강진, 옹기마을 등 특산지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아이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또한 노인복지관과 연계하여 어르신들이 옹기 사용법이나 전통 음식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는 세대 간 교육도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전통문화를 배우는 동시에 세대 간 교류의 중요성도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요즘 아이들이 옹기를 모르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전통문화를 ‘낡은 것’으로만 치부하고, 제대로 전수할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탓이 크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작은 실천을 한다면, 옹기는 다시 아이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조카에게 옹기의 매력을 조금씩 알려줄 생각이다. 언젠가 그가 커서 “이모, 나 옹기 하나 살게”라고 말하는 날을 꿈꾸며.

지금 당장 집에 있는 옹기를 꺼내 아이와 함께 냄새를 맡아보는 건 어떨까? 그게 전통문화 교육의 첫걸음이다.